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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oot :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maxman999 2023. 12. 12. 13:34
아포리아는 헬라어로 '막다른 골목'을 의미한다.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한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상대를 종종 사상적 아포리아에 빠트리곤 했다. 무지의 지각이야말로 참된 앎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포리아에 갇히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었을까, 소크라테스는 신을 모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선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과반 이상의 찬성으로 죽임을 당한다.
소크라테스만큼 충분히 잔인한 삶은 종종 우리를 아포리아에 빠트리곤 한다. 나도 최근에 아포리아를 마주한 적이 있다. 도무지 돌아갈 엄두가 나지않는 길에서 막다른 벽을 마주했을 때의 공포와 불안은 영혼을 무참히 짓이긴다. 만약 내가 2천년 전 아테네 법정에 있었다면, 나도 소크라테스를 죽였겠지. 아늑했던 믿음이 무너지며 괴로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두번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삶의 관성이 남았던 건지, 막다른 벽을 되돌아갈 용기가 조금은 있었고 갈림길을 되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낯익은 갈림길을 다시 마주했을 때, 시야는 넓어져 있었고 사고는 이전보다 또렷했다. 적어도 잘못된 선택지 하나는 없어졌다. 나와 아테네 시민들은 너무 성급하게 소크라테스를 죽여버린 것이다. 그가 있었다면 이정도로 돌아가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한다. 끝없는 질문속에서 아포리아를 발견할 수 있고, 무지를 자각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이데아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닌 무지함인 것이다. 지속되는 무지함 속에서 아포리아는 점점 두꺼워진다. 삶의 관성마저도 넘을 수 없을 만큼 두꺼워진 벽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영혼은 사그라든다.
나는 나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캐묻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무지속에서 무감각하게 일관했던 삶을 정산하고자 한다. 이제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때가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삶을 캐묻고자 한다. 이상향을 향한 내 삶의 궤적은 어떠할런지, 뒤에 남겨진 글들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