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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그리스 로마 신화 : 에코와 나르키소스 (2)
    한입크기 인물사전/그리스 로마 신화 2024. 2. 24. 15:59

    한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고 투명한 연못이 하나 있었다. 목동들도 연못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들짐승과 새들마저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 연못만이 홀로 반짝이고 있었다. 깊은 적막을 깨며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도착했다. 사냥과 더위에 지쳤던 나르키소스는 고고하게 빛나고 있는 연못을 발견하자 홀린 듯이 다가갔다. 목을 축이기 위해 나르키소스가 샘물을 뜨려고 한 순간, 더 큰 갈증과 허기가 엄습했다. 이 지독한 결핍을 유발한 것은 연못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르키소스가 연못 속에서 본것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이었다. 물 속의 인간은 대리석으로 깎아 놓은 것처럼 완벽했고, 두 눈은 천상의 쌍둥이별처럼 빛났다. 나르키소스가 그와 눈을 마주치자 별안간 그의 온몸에서 욕망과 사랑이 샘솟기 시작했다. 나르키소스는 당장 그에게 키스를 퍼붓기 위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양팔은 그에게 닿지 않았고 연못이 흩어지자 물 속의 사람은 사라져버렸다. 나르키소스는 당황했지만 연못이 고요함을 되찾자 사랑하는 이가 다시 나타났고, 안심할 수 있었다.

     

    나르키소스의 몸은 자꾸만 달아올랐다. 몇번의 시도가 더 있었지만 나르키소스의 입술이 그에게 닿은 적은 없었다. 이는 물속에 있는 인간은 사실 투명한 물에 비친 나르키소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한시도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양팔을 휘젓는 것도 포기한 채, 그저 엎드린 채로 연못을 간절히 응시할 뿐이었다.

    나의 큰 슬픔은 우리를 막는 것이 광대한 바다 혹은 굳게 닫힌 성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약간의 물에 의해 떨어져 있을 뿐이다.
    - 나르키소스

     

    나르키소스가 울면 물속의 사람도 따라서 울기 시작했다. 나르키소스가 웃으면 그도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 하지만 나르키소스가 말을 걸었을 때 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결국 나르키소스는 물속의 인간이 자신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그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연못을 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많은 고통으로 신음하던 나르키소스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더 걱정됐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다. 나르키소스는 그저 수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르키소스의 몸속에서 치솟던 불길은 그를 서서히 소진시켰다. 그는 이전의 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슬프다'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숲을 떠다녔는데, 이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던 에코가 그의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남은 생명 한 줌이 몸속에서 빠져나갈 때, 나르키소스가 연못을 향해 '안녕'이라 말하자, 이를 바라보던 에코가 '안녕'이라 화답해주었다. 그렇게 나르키소스는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곧이어 죽음은 나르키소스의 눈을 감겨주었고, 몸은 풀밭에 눕혀주었다.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슬퍼하던 그의 누이들이 장례를 위해 시체를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연못의 주변에는 노랗고 하얗게 핀 수선화 꽃들만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고자료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