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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리스 로마 신화 : 펜테우스한입크기 인물사전/그리스 로마 신화 2024. 2. 25. 16:46
나르키소스의 죽음은 테베 전역으로 퍼졌고, 이를 예언했던 티레시아스의 명성도 함께 유명해졌다. 하지만 당시 테베의 왕이었던 펜테우스는 앞도 못 보는 맹인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겠냐며 티레시아스를 무시했다. 이에 티레시아스는 왕의 운명을 점치며 다가올 무서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맹인은 당신의 이모인 세멜레가 낳은 디오니소스가 곧 새로운 신으로서 이곳에 돌아올 것이라 말했다. 만약 왕이 합당한 대우로써 신을 대접하지 않는다면, 몸이 갈기갈기 찢길 것이고 가족들은 그 피로 붉게 물들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신들도 우습게 보던 펜테우스는 코웃음 치며 예언을 무시했다.
티레시아스의 예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적중했다. 테베의 들판 곳곳에서 디오니소스 축제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축제는 갈수록 고조되어 사람들이 무리 지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유부녀와 처녀들이 남자들과 뒤섞였으며, 새로운 의식 속에서 귀족과 평민의 구분은 불가능했다. 디오니소스가 부른 새로운 전쟁 속에선 칼들의 마찰음은 들리지 않았고,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여자들의 신음소리가 가득할 뿐이었다.
광란의 현장을 본 펜테우스는 분노했다. 전쟁의 신 아레스의 후손들이 무장도 안 한 청년에게 땅을 빼앗기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펜테우스는 지체하지 않고 수행원들에게 디오니소스를 잡아오라 명령했다. 선대 왕인 카드모스와 몇몇 사람들은 펜테우스를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수행원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디오니소스는 어디에도 없었다며 대신 사제 아코이테스를 포박해왔다. 왕은 사제를 당장 처형하고 싶었지만 분노를 삭이며 디오니소스를 숭배한 이유와 의식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캐물었다.
항해사인 아코이테스는 자신이 탄 배가 우연히 키오스섬의 해안에 정박했을 때, 동료들이 아름답게 생긴 청년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청년은 취한 듯 몸을 비틀거리며 배에 올라탔고, 자신의 고향인 낙소스 섬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코이테스를 제외한 선원들은 수려한 청년의 모습을 보고선 온갖 음흉한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아코이테스는 청년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료들이 음흉한 간계를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때 그들을 만류했다.
아코이테스의 만류는 소용없었고, 동료들은 그로부터 키를 빼앗아 낙소스 섬의 반대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별안간 배가 육지에 올라선 것처럼 멈춰 섰다. 선원들의 노력에도 배를 움직일 수는 없었고, 배가 포도 잎사귀와 덩굴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미 술에서 깬 청년은 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공포와 광기의 비명소리가 퍼지기 시작하더니 선원들의 척추가 휘어졌다. 그들의 손은 지느러미로 변했고 물 밖에서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기 때문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코이테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을 제외한 선원 열아홉 명이 돌고래로 변해 주변을 춤추듯 헤엄치고 있었다.
아코이테스는 일의 경위와 디오니소스의 능력을 전부 설명했지만 왕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펜테우스는 아코이테스를 감옥에 보내 끔찍하게 고문하고 죽이라 명령했다. 펜테우스는 일을 바로잡기 위해 직접 축제의 현장으로 향했다. 디오니소스 신도들의 노랫소리가 커지고 축제의 광란이 고조될수록 펜테우스도 거칠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불경한 걸음으로 축제의 들판을 지나던 펜테우스를 처음으로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아가베였다.
어머니의 눈에 아들은 그저 신의 축제를 훼방하는 불온한 수퇘지로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동생들을 향해 함께 수퇘지를 처단하자고 외쳤다. 펜테우스의 이모들은 쏜살같이 달려들어 그의 양팔을 뜯어버렸다. 펜테우스는 빌면서 애원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광란 속에서 비명을 지르던 아가베가 펜테우스의 머리를 뜯어버렸을 때 왕의 고통은 끝날 수 있었다. 펜테우스의 죽음으로써 경고를 받은 테베 사람들은 새로운 의식을 받아들였고, 신성한 제단을 쌓아 디오니소스를 경배하기 시작했다.
참고자료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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