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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그리스 로마 신화 : 페르세포네한입크기 인물사전/그리스 로마 신화 2024. 6. 5. 15:49
시칠리아는 사실 티폰이라는 거인 위에 세워진 섬이다. 티폰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로, 과거에 천상을 차지하기 위해 올림포스 산으로 쳐들어간 적이 있었다. 티폰은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천상을 거의 차지할 뻔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제우스에게 패배하여, 에트나 산 밑에 산채로 결박되었다.
티폰은 자신을 짓누르는 도시와 산들을 떨쳐내기 위해 불을 내뿜으며 자꾸만 몸부림쳤다. 하지만 위대한 신들도 티폰을 죽일 수가 없어서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티폰이 난동을 부린 후에는 땅이 찢어져 지하 세계에 햇빛이 새어들었기 때문에 명계의 왕 하데스가 종종 지상으로 올라와 주변을 살피곤 했다.
한편 시칠리아의 엔나라는 도시 근처에 페르구스라는 깊은 호수가 있었다. 수면에는 백조들이 미끄러지듯 헤엄치고 있었고, 호수의 주변에는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게 펴있었다. 그곳에 하얀 나리꽃들을 바구니에 담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정체는 곡물과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페르세포네였다. 페르세포네는 축복 속에서 주어진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주변을 순찰하던 하데스의 눈에 들었다. 명계의 왕은 매혹되어 곧바로 페르세포네를 납치해버렸다. 그 과정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페르세포네의 윗옷 일부가 찢어지면서 그녀가 모았던 꽃들이 모두 바닥에 쏟아져버렸다. 페르세포네는 바닥에 떨어진 흰 꽃을 슬프게 바라보며 연신 어머니를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하데스는 곧장 수레를 타고 지하세계 타르타로스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랑하는 딸이 보이지 않자, 데메테르는 겁에 질린 채 세상의 모든 땅과 물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식을 찾는 어머니에게 너무 넓은 세상이란 있을 수 없었다. 데메테르가 지친 몸을 이끌고 시칠리아 땅에 도착했을 때, 마침내 페르세포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딸의 찢어진 허리띠를 본 그녀는 딸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신은 산발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롭게 울었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가 납치된 시칠리아 땅을 거세게 비난했다. 여신은 땅을 가는 쟁기들을 부숴버렸고 씨앗들을 모두 말려 버렸다. 자라던 밀과 보리는 너무 강한 햇빛에 타버리거나, 또는 너무 많은 비로 인해 썩어버렸다. 그렇게 시칠리아에 존재하던 다산과 풍요가 사라졌고, 엉겅퀴와 억센 잡초들만이 대지를 가득 채우게 됐다.
데메테르의 슬픔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괴로워했지만, 시칠리아를 각별히 사랑하던 강의 님프 아레투사가 특히 괴로워했다. 아레투사는 땅에겐 죄가 없다며, 자신이 본 진실을 데메테르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아레투사는 시칠리아에 오기 위해 한번은 아주 낮은 동굴 사이로 흘러간 적이 있었다. 처음 보는 별들이 있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그녀가 있던 곳은 다름 아닌 스틱스 강이었다. 그때 저 멀리 안개 사이로 페르세포네가 지나갔다. 그녀는 제우스에 버금가는 막강한 대왕의 아내가 되어있었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슬픔과 공포가 얼룩져있었다.
이 말을 들은 데메테르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한동안 제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린 여신은 곧장 천상으로 올라가 제우스를 찾았다. 제우스는 형 하데스가 자신의 딸을 납치했다는 사실에 매우 난처해졌다. 하지만 데메테르의 분노와 신음하는 시칠리아의 땅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당신이 그토록 원하니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도록 하겠소.
하지만, 딸이 명계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하오.
이것은 나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 일이오.
운명은 페르세포네의 귀환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원에서 산책을 하던 중 나무에 열린 주홍색 과일을 본 적이 있었는데, 무심결에 과일의 씨앗 일곱 개를 먹어버린 것이었다. 이 일은 아무도 모를 수 있었는데, 하필 명계의 신 중 한 명인 아스칼라푸스가 이를 보고 말았다. 아스칼라푸스는 이 사실을 밀고하여 페르세포네의 귀환을 막아버렸다. 이에 분노한 페르세포네는 그를 새로 변신시켜 버렸다. 그러자 아스칼라푸스는 커다란 머리를 갖게 되었고, 양팔에는 황갈색 깃털이 돋았다. 그렇게 그는 슬픔의 전령이자, 불길한 조짐을 알려주는 올빼미로 변해버렸다.
결국 제우스는 데메테르와 하데스를 중재하여 일 년을 절반으로 나누어, 페르세포네가 6개월은 남편과 살고 나머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도록 했다. 그렇게 페르세포네가 지하에 있을 때는 데메테르가 슬픔에 잠겨 곡식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겨울이 찾아왔다. 반면 기다림 끝에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올라올 때면, 대지에 사랑이 충만하여 온 들판에 초록과 생명이 가득하게 되었다.참고자료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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