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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 그리스 로마 신화 : 이노
    한입크기 인물사전/그리스 로마 신화 2024. 5. 20. 21:40

    디오니소스가 불러온 광란의 축제 속에서 펜테우스가 끔찍하게 살해되자, 테베 전역에서 디오니소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노라는 여인은 새로운 신의 위력에 심취하여, 어딜 가든지 디오니소스의 위대한 능력을 증언하곤 했다. 그녀는 보이오티아의 왕 아타마스의 아내이자, 테베를 건국한 영웅인 카드모스의 딸이었다. 이노는 카드모스의 다른 딸들, 즉 그녀의 자매들과는 달리 별다른 비극에 희생되지 않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헤라는 그런 이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과 가정을 주관하는 여신은 제우스와의 불륜으로 태어난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그녀가 역겨웠다. 분노한 헤라는 결국 디오니소스가 펜테우스를 죽였던 방식 그대로 이노에게 복수하기로 결정한다. 헤라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어둠과 냉기 그리고 죽은 자들이 모여드는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헤라는 안개를 내뿜으며 느리게 흘러가는 스틱스강을 따라 명계에 도착했다. 하데스가 다스리는 이 왕국의 도시들은 황량했고, 숨 막히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헤라가 명계의 문턱을 넘어서자 가장 먼저 경비견 케르베로스가 세 개의 입으로 세 번 짖어 여신의 도착을 알렸다.

    헤라는 지하 감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저주받은 존재들을 살펴보며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티티오스였다. 티티오스는 축구장 두개 크기의 거인인데, 지상에 있을 때 모성을 주관하는 여신인 레토를 겁탈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쌍둥이 자녀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이를 저지했고, 남매가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렇게 티티오스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영원히 사지가 묶인 채 독수리에게 내장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티티오스를 지나치자, 탄탈로스가 보였다. 그는 제우스의 아들이었으나 잔인한 성정과 오만함으로 인해 신들의 분노를 샀다. 결국 그는 지옥에서 채울 수 없는 허기에 영원히 시달리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탄탈로스 너머에는 시지프스가 있었다. 그는 자꾸만 떨어지는 바위를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지상에 있을 때 신들을 속여 세상을 어지럽게 했기 때문이었다.

    헤라는 영원의 징벌 속에서 고통받는 존재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본래 목적인 에리니에스를 불러냈다. 에리니에스는 복수를 주관하는 세 자매로, 죄지은 자들을 잔인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악명높은 여신들이었다. 그녀들의 이름은 각각 티시포네, 알렉토, 메가이라였는데, 그중 티시포네가 헤라를 맞이해 주었다. 헤라는 자신이 겪은 수모에 대해 호소하며, 이노와 아타마스를 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헤라가 점점 격양되는 것을 느낀 티시포네는 일단 그녀를 진정시켰다. 잠깐의 정적 후, 티시포네는 헤라에게 당신이 생각한 복수가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렇게 티시포네의 약속을 받은 헤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천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헤라가 돌아가자 티시포네는 피가 흐르는 외투와 피에 물든 횃불을 집어들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출발하기 전에 슬픔과 공포, 그리고 무서운 얼굴의 광기를 불러 그녀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노가 살고 있는 테베의 궁궐에 도착하자 온갖 불길한 징조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불안함을 느낀 이노와 남편 아타마스는 겁을 집어먹고는 집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티시포네가 나타나며 둘의 앞을 막아섰다. 티시포네는 곧장 머리카락 속에서 뱀 두 마리를 꺼내 부부에게 던졌다. 그러자 뱀들은 부부의 가슴 사이를 지나가며 악독한 독을 뿜어댔다. 뱀들이 뿜어낸 독은 부부의 육체가 아닌 정신을 병들게 했다. 맹독이 부부의 심장에 닿자, 티시포네는 만족한 듯 웃으며 하데스의 지하도시로 돌아갔다.

     

    얼마 후, 먼저 눈을 뜬 것은 아타마스였다. 하지만 그는 미친 사람처럼 홀의 중앙에서 연신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첫째 아들인 레아르쿠스가 아빠를 향해 작은 팔을 내밀었으나, 아타마스는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아들을 낚아채 단단한 암석에 세게 던져버렸다. 이를 보고 있던 이노는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혹은 독에 취한 까닭인지, 미친 듯이 소리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이노의 품 속에는 둘째 아들인 멜리케르타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어느새 이노는 절벽의 끝자락에 서있었고, 광기에 휩싸인 그녀는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고 바다로 몸을 던져버렸다.

     

    한편, 이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손녀인 이노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이노와 그녀의 아들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했다. 포세이돈은 아프로디테의 기도를 들어주었고, 두 모자의 인간성을 없앤 뒤 신성을 부여해 주었다. 그렇게 아들은 팔라이몬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는 레우코테아라는 이름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하얀 물보라의 여신이 된 레우코테아는 먼 훗날, 수년간 지중해를 방황하던 영웅 오디세우스를 만났고, 그의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

     

     

    참고자료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