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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 그리스 로마 신화 :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한입크기 인물사전/그리스 로마 신화 2024. 9. 4. 17:32

    자식을 모두 잃은 니오베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테베 주변의 여러 도시에서 문상을 왔다. 스파르타와 아르고스, 그리고 코린투스와 트로이까지 모든 도시에서 그녀를 찾아왔으나 오직 아테네만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야만인 군대가 바다를 건너 아테네를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트라키아의 왕 테레우스는 지원군을 이끌고 야만인들을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테레우스는 아테네의 왕 판디온에게 깊은 신뢰를 얻었고 그의 딸인 프로크네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테레우스와 프로크네는 결혼 후 트라키아로 돌아가 아들 이티스를 낳았다.

     

    하지만 프로크네의 마음 한편에는 고향 아테네와 사랑하는 여동생 필로멜라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섯 해의 가을이 지났을 때 프로크네는 남편에게 동생 필로멜라를 트라키아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테레우스는 직접 아테네로 가 필로멜라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 테레우스는 프로크네에게 지독한 그리움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장담하며 아테네로 떠났다. 그러나 아테네에 도착한 테레우스는 오히려 필로멜라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말았다. 건초 더미에 붙은 불이 거세게 번지듯이 테레우스의 마음속에서 자꾸만 욕망이 불타올랐다.

     

    테레우스는 검은 속내를 힘겹게 감추며,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아버지인 판디온을 설득했다. 테레우스는 자신의 요구가 프로크네의 부탁임을 거듭 강조했으나, 사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우습게도 테레우스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는 아내를 위하는 경건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테레우스의 음흉한 수작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다름 아닌 필로멜라 자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겪게 될 엄청난 불행을 알지 못한 채, 테레우스를 도와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두 딸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판디온은 결국 필로멜라를 트라키아로 보냈다.

     

    독수리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토끼를 잡듯이 필로멜라를 낚아 챈 테레우스는 자신의 쾌락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그는 트라키아에 도착하자마자 필로멜라를 차가운 숲 속으로 끌고 가 겁탈했다. 필로멜라는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지만 테레우스의 완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불쌍한 필로멜라는 눈앞의 야만인에게 겁탈당하면서도 언니와의 의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더 슬퍼했다. 테레우스는 필로멜라의 혀를 잘라버린 뒤, 숲 속에 감추어둔 오두막에 보초와 함께 그녀를 가둬버렸다. 이후에도 테레우스는 필로멜라의 훼손된 육체를 품에 안기 위해 오두막을 찾았다고 한다.

     

    프로크네는 돌아온 남편을 보고 여동생을 찾았지만, 뻔뻔스럽게도 테레우스는 필로멜라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프로크네는 깊은 슬픔에 빠졌지만,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테레우스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프로크네는 가묘를 세웠고, 검은 상복을 입어 죽지도 않은 여동생의 영혼을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테레우스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숨긴 채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하지만 필로멜라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결코 묻어두지 않았고, 일 년의 시간이 더 흘렀을 때 그녀의 복수가 시작됐다. 혀가 잘려 말을 할 수 없던 필로멜라는 옷감을 엮어 자신의 이야기를 자수로 새기기 시작했다. 필로멜라는 이 옷감을 수발을 들던 하녀에게 맡겨 언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녀는 자신이 무엇을 전달하는지도 모른 채 그 옷감을 프로크네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프로크네는 동생이 살아있으며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프로크네는 깊은 침묵에 빠졌다. 이는 거대한 슬픔이 오히려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분노에 휩싸인 프로크네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복수하고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 날 프로크네는 조용히 궁전을 빠져나와 여동생이 있는 숲 속으로 향했다. 오두막의 문을 부수고 들어간 프로크네는 디오니소스 신도의 옷을 입혀 몰래 왕궁으로 데려왔다. 프로크네는 눈앞에 몸을 떨며 슬퍼하고 있는 여동생을 보며 다시금 복수를 다짐했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가 어떻게 복수할 지 궁리하고 있을 때, 아들 이티스가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순간 테레우스를 지옥에 빠트릴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른 프로크네는 차가운 눈으로 이티스를 바라보았다. 프로크네는 이티스를 죽이기 위해 칼을 손에 쥐었지만 갑자기 모정이 솟구쳐 차마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프로크네는 혀가 잘려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여동생과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아들을 번갈아 보았다. 아들의 얼굴에서 아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을 때, 그녀는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프로크네는 단 일격으로 아들의 목을 베어 냈다. 이어서 필로멜라는 이티스의 잘려나간 몸을 토막내 요리하기 시작했다. 요리가 끝나자 프로크네는 테레우스를 불러 만찬을 시작했다. 홀로 옥좌에 앉은 테레우스는 자식의 살로 만든 요리를 모두 받아먹었다. 잔치를 즐기던 테레우스는 식사가 끝난 후, 만족한 표정으로 아들 이티스를 데려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필로멜라가 아들의 잘린 머리를 들고 나타났다. 그 순간 테레우스는 자신이 아들의 무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절망과 분노에 휩싸인 채,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테레우스는 칼을 뽑아 들고 두 자매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자매의 등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새로 변신한 두 자매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달려드는 야만인으로부터 도망쳤다. 한명은 숲으로 도망쳤고, 다른 한 명은 지붕 밑으로 날아들었다. 그렇게 동생의 비극에 괴로워하던 프로크네는 밤꾀꼬리가 되어 밤낮으로 울게 되었고, 제비로 변한 필로멜라의 목에는 이티스의 피가 붉게 물들어있었다. 이들을 쫓던 테레우스도 후투티라는 새가 되었으며, 아직도 고함을 지르며 두 자매를 쫓고 있다고 한다.

     

    참고자료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이종인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