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34. 그리스 로마 신화 : 이아손
    한입크기 인물사전/그리스 로마 신화 2024. 9. 24. 23:32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지방에 이올코스라는 항구도시가 있었다. 이올코스는 아이손의 통치 아래에서 평화롭게 번영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손의 이부동생인 펠리아스는 형의 옥좌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펠리아스는 아이손이 너무 늙었고, 그의 아들인 이아손은 너무 어리다는 것을 핑계로 형을 몰아낸 뒤 이올코스를 차지했다. 동생에게 왕좌를 빼앗긴 아이손은 아들이 걱정됐다. 아이손은 펠리아스의 감시를 피해 어린 이아손을 켄타우로스 족의 대현자인 케이론에게 맡겨, 학문과 무예를 배우게 했다. 케이론은 이아손을 정성껏 가르쳤고, 그렇게 이아손은 자신의 정당한 영광을 되찾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펠리아스는 눈부신 왕국을 완전히 손에 넣었음에도 마음 한편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을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이는 언젠가 한쪽 발에만 샌들을 신은 남자가 자신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시간이 흘러 장성한 이아손은 자신의 왕좌를 되찾기 위해 이올코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아손은 고향으로 가는 길에 물살이 거센 아나우로스라는 강을 마주했다. 이아손이 강을 건너려고 할 때, 웬 노파가 그를 불러 세웠다. 노파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며 강을 건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아손은 흔쾌히 노파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넜으나, 그 과정에서 한쪽 샌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실 이아손의 등에 엎힌 노파는 신들의 여왕이자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였다. 헤라는 과거에 펠리아스에게 모욕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앙갚음을 위해 이아손의 여정을 돕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이아손이 한쪽 샌들만을 신은 채 왕궁에 도착하자, 펠리아스는 자신의 운명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펠리아스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이아손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을 죽이기 위해 불가능한 임무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왕좌를 돌려주는 대가로 콜키스에 있는 황금 양털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수많은 영웅들이 황금양털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누구도 황금양털을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 이는 잠에 들지않는 용이 밤낮으로 양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콜키스로 향하는 길에는 이미 많은 영웅들의 피가 묻어 있었음에도, 이아손은 두려움 없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아손은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리스 전역의 영웅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동시에 콜키스로 가기 위해 커다란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배는 아테나의 축복 속에서 제작됐고, 조선공인 아르고스의 이름을 따 아르고호라고 이름지어졌다. 아르고호에는 많은 영웅들이 승선했는데 그중에는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아스클레피오스와 같이 유명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훗날 '아르고나우타이'라고 불리게 될 그들은 이아손과 함께 아르고호를 타고 황금 양털을 얻기 위한 위대한 항해를 시작한다.

     

    길고 험난한 모험 끝에 아르고호는 마침내 콜키스에 도착했다. 그곳은 아이에테스가 통치하고 있었고, 그가 바로 황금양털의 수호자였다. 아이에테스는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요구하자, 마치 펠리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과업 두 개를 요구했다. 하나는 거칠게 불을 내뿜는 황소를 길들여 땅을 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갈아놓은 땅에 용의 이빨을 뿌려 그곳에서 자라나는 병사들을 모두 무찌르는 것이었다. 아이에테스는 말을 마치기 전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조건을 하나 걸었는데, 이는 다른 영웅들의 도움없이 이아손 혼자서 과업을 완수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아손을 궁지에서 구해준 것은 다름아닌 아이에테스의 딸 메데이아였다. 메데이아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마녀로, 이아손을 처음 본 순간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자신의 것보다 강력한 주술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그것은 이아손의 잘생긴 얼굴과 고상한 정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매력이었다. 그녀는 이아손이 과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마법의 약을 만들어 주었고, 병사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묘책을 알려주었다.

     

    다음날 이아손은 메데이아가 준 약을 온몸에 바른 뒤 콜키스의 신성한 들판으로 나갔다. 들판에는 이미 많은 구경꾼들 모여 있었고, 그 사이로 불을 내뿜는 황소들이 나타났다. 황소의 숨결에 풀들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본 구경꾼들은 공포로 온몸이 굳어졌다. 이아손이 황소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이아손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용광로의 쇳물과 같은 것들을 마구 뿜어댔다. 하지만 메데이아의 약초 덕분에 이아손은 화염을 느끼지 못한 채 황소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아손은 황소에게 멍에를 씌우고 강제로 무거운 쟁기를 끌도록 했다.

     

    이아손은 지체하지 않고 용의 이빨들을 파헤쳐진 땅에 심었다. 대지는 씨앗들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씨앗은 점점 자라더니 인간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오듯이, 대지의 내장에서 전사들이 솟아올랐다. 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전사들이 무장한 채 쏟아져나왔다. 그들의 위압감에 많은 이들이 겁을 집어먹었고, 심지어 묘책을 알려준 메데이아마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하지만 이아손은 두려움을 극복했고, 메데이아가 알려준 대로 무거운 돌을 들어 적들 한가운데에 던졌다. 그러자 땅에서 태어난 형제들이 서로 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마지막 전사가 쓰러지자, 이아손과 그의 동료들은 환호하며 소리쳤다. 이를 지켜보던 메데이아도 원정대와 함께 이아손을 격려하고 싶었으나,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이아손이 모든 과업을 완수했음에도 아이에테스는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결국 이아손 일행은 메데이아와 함께 황금양털을 훔쳐 달아나기로 했다. 황금양털은 잠들지 않는 용이 지키고 있었으나, 메데이아의 주문으로 용을 잠재운 이아손 일행은 마침내 황금양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원정대는 곧장 아르고호를 타고 도망쳤지만 아이에테스의 군대가 턱밑까지 그들을 추격해 왔다. 군대를 따돌리기 위해 메데이아는 끔찍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이아손을 위해 자신의 동생 압시르토스를 유인해 죽였고, 시체를 토막내 바다에 던져 버렸다. 깜짝 놀란 아이에테스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동안 원정대는 무사히 콜키스를 빠져나와 이올코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가지고 돌아왔음에도 펠리아스는 왕좌를 내놓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함께 끔찍한 복수를 계획했다. 먼저 메데이아는 펠리아스의 두 딸들을 불러내어 신비한 마법을 보여줬다. 메데이아가 늙고 병든 양을 토막내어 신비한 즙액과 함께 끓는 솥에 빠트리자, 어느새 건강하고 젊은 양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놀란 펠리아스의 딸들은 곧장 늙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효심이 가득한 그녀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펠리아스를 마법의 즙액과 함께 끓는 솥에 빠트려 버렸다. 당연히 메데이아가 준 마법의 즙액은 가짜였고, 그렇게 펠리아스는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한다.

     

    이로써 이아손은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했으나 아버지의 왕좌를 되찾을 수는 없었다. 이는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손에 너무 많은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잔혹한 만행을 알게 된 시민들은 두 사람에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둘은 분노한 시민들을 피해 간신히 코린토스로 피신했지만, 그들의 불행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손에는 여전히 검은 피가 묻어있었고, 짙은 피비린내를 맡은 운명이 그들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참고자료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이종인 옮김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