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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그리스 로마 신화 : 악타이온
    한입크기 인물사전/그리스 로마 신화 2024. 1. 27. 16:36

    테베의 번영과 함께 위대한 왕 카드모스의 영광도 나날이 드높아졌다. 그야말로 카드모스는 유배 중에 큰 행운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행운이 자손들에게는 미치지는 못하였는데, 카드모스의 손자 악타이온에게 일어난 일은 오히려 불행을 넘어 저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악타이온은 현자 케이론에게 수학하고 영웅 헤라클레스와 모험을 할 정도로 총명하고 용맹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악타이온이 몇 가지 업적을 세웠다 해서 그의 행복을 속단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운명은 그가 죽어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는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악타이온의 비극은 아폴론이 끄는 태양마차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정오에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사냥을 즐기던 악타이온은 햇빛이 너무 강렬해지자 사냥을 멈추고 풀어둔 사냥개들을 불러들였다. 악타이온은 다정한 어조로 친구들에게 잠시 쉬었다가 해가진 이후에 사냥감을 다시 쫓자고 말했다. 악타이온은 흥분한 사냥개들을 진정시킨 뒤 휴식을 취했다.

     

    한편 근처에는 시원한 물이 흐르고 주변으로 가문비나무가 울창한 가르가피에라는 계곡이 있었다. 계곡의 깊은 곳에는 용암석과 부석만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아치 형태의 아름다운 동굴이 있었다. 동굴 안쪽에는 맑은 물이 고여있는 샘이 있었는데, 순결한 여신 아르테미스가 사랑하여 자주 목욕을 하던 곳이었다. 여느 날처럼 아르테미스는 님프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풍만하고 이슬처럼 깨끗한 몸을 씻고 있었다. 아르테미스와 동행한 님프들은 항아리로 물을 길어 여신의 몸에 끼얹으며 목욕을 도왔다.

     

    여신의 목욕이 한창일 때, 휴식을 위해 이곳을 배회하던 악타이온이 신성한 동굴에 이르렀다. 신비로운 아치의 형상과 시원한 물소리에 이끌린 악타이온이 동굴에 들어갔을 때였다. 찢어지는 비명이 온 계곡에 울려 퍼졌고, 님프들은 서둘러 여신의 몸을 가렸다. 하지만 여신의 몸은 님프들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낯선 남자에게 젖가슴이 드러나는 불상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수치심에 분노한 여신은 악타이온에게 샘물을 뿌리며 그를 저주했다. 

    자, 이제 너는 순결한 여신의 알몸을 보았다고 자랑할 수 있게되었다.
    가서 말해 보아라, 할 수 있다면.

     

    여신이 말을 마치자 악타이온의 이마에 사슴의 뿔이 자라났다. 목이 점점 길어지더니 온몸이 얼룩덜룩한 가죽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공포에 휩싸인 악타이온은 동굴을 떠나 멀리 달아났다. 그는 경이로울 정도로 빨리 달아날 수 있었는데 그의 다리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곡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그는 소리를 질렀지만 짐승의 울음소리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온전히 수사슴으로 변신한 악타이온은 어찌할 줄을 몰라 숲 속을 방황할 뿐이었다.

     

    아폴론이 태양마차를 거두고 휴식을 취하러 들어갈 때도 악타이온은 숲을 배회하고 있었다. 주변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으나 악타이온은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필 그때 악타이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과 사냥개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악타이온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곧바로 사냥을 시작했다. 충분한 휴식으로 기력을 되찾은 사냥개들은 금세 숲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수사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들은 즉시 송곳니를 날카롭게 세워 사슴을 향해 달려들었다. 악타이온이 심혈을 기울여 기른 사냥개들은 주인에게 배운 대로 사냥감의 모든 급소에 이빨을 찔러 넣었다. 악타이온은 연신 비명을 질렀지만 목에서는 인간의 것도 아닌 짐승의 것도 아닌 괴로운 신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수사슴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악타이온의 친구들은 개들을 칭찬하며 오늘의 수확을 칭찬했다. 친구들은 연신 악타이온을  부르며 아쉬워했다. 이는 그가 기른 사냥개들의 용맹한 모습을 직접 보았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아쉬움과는 반대로 악타이온은 사실 그곳에 있었고, 심지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여신의 분노는 수사슴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 불쌍한 악타이온이여. 악타이온은 여느 때처럼 사냥을 즐긴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여신도 평소와 다름없이 동굴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두 개의 일상,  두 개의 우연이 겹치니 이토록 잔인한 비극이 만들어진 것이다. 삶이라는 잔인한 장난을 두고 어떻게 인간에게 죄를 물 수 있는 것인가. 이 일을 잘 들여다 보라, 악타이온에게 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가?

     

    참고자료 :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